무제 문서

<CHAMPIONS>

HISTORY

Milan Associazione Calcio s.p.a

 

:: 밀라노의 2인자

<1907년의 3번째 스쿠데토 이후로 AC밀란은 기나긴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밑줄에서 2번째가 킬핀.>

 초기의 AC밀란은 '밀란 축구&크리켓 클럽'이라는 이름 그대로 크리켓과 축구를 병행하는 클럽이었지만 밀라노가
 점점 이탈리아 축구의 중심으로 성장해감에 따라 축구가 클럽의 주종목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명칭도 AC밀란으로
  바뀌게 되었다.

 1900년 3월 11일, 밀라노 최초의 축구 클럽인 메디오라눔(Mediolanum)과의 경기를 3-0 승리로 장식하며 이탈리아
 축구계에 데뷔한 AC밀란은, 2년째인 1901년엔 당시의 이탈리아 최강이었던 제노아를 물리치고 첫번째 리그타이틀
 을 따내게 된다. 
제노아는 1898년부터 시작된 이탈리아 리그를 3년 연속 제패해온 클럽이었다. 비록 참가팀은 6개뿐이었지만...

 AC밀란은 1906년과 1907년에도 우승을 차지했는데, 당시 AC밀란 최고의 스타는 클럽의 창설자이면서 유니폼과
  문양을 도입한 허버트 킬핀(Herbert Kilpin)이었다. 킬핀과 함께 클럽을 창설한 알리슨(Allison)과 데이비스(Davies)
 역시도 AC밀란의 주축선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1908년에 클럽의 '반역자'들이 팀을 탈퇴해 인터밀란을 창설하고, 또 이탈리아를 장악한 파시즘의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가 외국 선수들을 이탈리아에서 추방시키면서 영국계 선수들이 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AC밀란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50-51시즌 스쿠데토를 차지할때까지의 기간은 AC밀란 최초의 침체기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라이벌
  인터밀란이 이 기간동안 4번의 스쿠데토를 차지한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 그레놀리 삼총사와 첫번째 전성기

<'Gre-No-Li' 삼총사>

 AC밀란에게 광명을 찾아준 선수들은 '그레놀리(Gre-No-Li) 삼총사'로 알려진 스웨덴 출신의 군나르 그렌(Gunnar  Gren), 군나르 노르달(Gunnar Nordahl), 닐스 리에드홀름(Nils Liedholm)이었다. 이들은 AC밀란에게 44년만의
 스쿠데토(50-51시즌)를 안겨주었다. 센터 포워드였던 노르달은 257경기에서 210골(AC밀란 역대 최다골)을 터뜨리
 는  놀라운 득점력을 선보여 5번이나 Serie-A 득점왕에 올랐으며, 49-50시즌엔 35골이라는 Serie-A 한시즌 최다골
 기록 을 수립하기도 했다. 리에드홀름은 후에 AS로마의 감독이 되어 82-83시즌의 스쿠데토를 일구어냈다.

 그레놀리 삼총사가 차례로 팀을 떠난 뒤에도 AC밀란은 우루과이의 영웅 후안 스키아피노(Juan Schiaffino)와
  98'월드컵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을 맡았던 체사레 말디니(Cesare Maldini), 브라질 출신의 스트라이커 호세 알타
 피니(Jose Altafini) 등의 선수들의 활약으로 54-55, 56-57, 58-59, 61-62시즌 스쿠데토를 차지하며 클럽 창단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AC밀란 최초의 챔피언스리그(당시는 유러피언컵) 타이틀은 62-63시즌에 얻게 되었다. 57-58시즌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2-3으로 패하며 쓴맛을 본 적이 있는 AC밀란. 이번에는 대회 2연패중이던 포르투갈의 벤피카를 맞았다.
  결승전에서 포르투갈의 위대한 영웅 '흑표범' 에우제비오(Eusebio)가 전반에 선취골을 성공시키지만, 골게터 알타
피니가 후반에 연달아 2골을 성공시킨 AC밀란은 결국 우승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 지아니 리베라와 Serie-B로의 강등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리베라>

 60~70년대의 AC밀란을 이끌었던 선수는 AC밀란 최다 출장기록(501경기)을 가지고 있는 지아니 리베라(Gianni  Revira)였다. 그가 AC밀란에 안긴 우승컵은 챔피언스리그 2회(62-63, 68-69), Serie-A 3회(61-62, 67-68, 78-79),
  코파 이탈리아 4회(66-67, 71-72, 72-73, 76-77), 컵 위너스컵 2회(66-67, 71-72), 인터콘티넨탈컵 1회(1969) 등으로  이루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추앙받는 리베라는 1969년엔 이탈리아
 선수 로서는 최초로 '유럽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78-79시즌에 AC밀란의 10번째 스쿠데토를 이루고 난 뒤 리베라가 은퇴하자(그는 그후 정치가로 변신했다.),  AC밀란 최대의 위기가 찾아오고 말았다. 클럽 창단이후 최초의 Serie-B 강등이라는 수모를 겪고 만 것이다.

 성적 때문이 아니었다. AC밀란-라치오의 경기에서 AC밀란의 구단주와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관여했기 때문이었다.
이사건으로 인해 당시의 구단주 펠리체 콜롬보(Felice Colombo)는 축구계에서 영구 추방당했으며, AC밀란은
  80-81시즌을 Serie-B에서 보내야만 했다. 다행히도 1년만에 다시 Serie-A로 복귀하기는 했지만, 복귀한 시즌에
 14위를 차지하며 82-83시즌에는 '진정한 실력으로' Serie-B로 강등되었다.

 



:: 오렌지 삼총사와 밀란 제너레이션

<오렌지 삼총사(레이카르트, 굴리트, 반 바스텐). 이들은 이미 AC밀란의 전설이 되었다.>

 이런 암흑기가 끝나게 된 것은 현재의 구단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1986년에 팀을 인수하면서부터였다. 이탈리아  최고의 언론재벌인 베를루스코니는 취임 즉시 그의 지갑을 열어 오렌지 삼총사<루드 굴리트(Ruud Gullit), 마르코
 반 바스텐(Marco Van Basten), 프랭크 레이카르트(Frank Rijkaard)>를 영입했고, 그 결과는 87-88 Serie-A, 88-89,  
89-90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나타났다. AC밀란에서 이같은 성공을 거둔 당시의 감독 아리고 사키(Arrigo  Sacchi)는 1991년 11월에 이탈리아 대표팀의 감독을 맡기에 이르렀다.

 사키가 떠났어도 파비오 카펠로(Fabio Capello)가 새로이 지휘봉을 잡은 AC밀란의 행진은 끝이 없었다. 오렌지
  삼총사의 활약에 프랑코 바레시(Franco Baresi), 로베르토 도나도니(Roberto Donadoni), 파울로 말디니(Paolo  Maldini), 디메트리오 알베르티니(Demetrio Albertini) 등의 이탈리아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AC밀란은 4번의
 스쿠데토(91-92, 92-93, 93-94, 95-96)와 93-94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일구어냈다.

 이 기간동안 조지 웨아(George Weah), 데얀 사비체비치(Dejan Savicevic), 장 피에르 파팽(Jean Pierre Papin),
  로베르토 바지오(Roberto Baggio) 등의 쟁쟁한 스타들이 AC밀란을 거쳐갔다.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선정된 바레시>

 물론 위에 언급한 모든 선수들이 위대하지만, 바레시는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하다. 1974년(15세)에 AC밀란의
  유스팀에 입단한 뒤로 AC밀란이 2번이나 Serie-B로 강등되는 동안에도 팀을 떠나지 않고 1997년 은퇴할때까지
 오직 AC밀란에서만 뛰어온,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바레시. AC밀란과 서포터들은 그의 등번호 '6번'을
 영구결번시키기로 했을 정도이다.

 구단주 베를루스코니는 AC밀란을 발판삼아 1994년엔 이탈리아 총리에 당선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AC밀란의 이
 위대했던 시기, 58경기 연속 무패라는 위업을 달성한 이 시기는 '밀란 제너레이션(Milan Generation)'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카펠로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뒤, 밀란 제너레이션의 막은 내렸고 96-97시즌엔 전시즌보다 무려
  10계단이나 떨어진 11위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두었다. 한시즌 뒤에 카펠로 감독이 복귀했지만, 밀란 제너레이션
 을 이끌었던 선수들이 모두 노장이 되어 버린 AC밀란은 또다시 10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98-99시즌에 AC밀란이 우승을 차지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새로이 감독직에 앉은 알베르토
  자케로니(Alberto Zaccheroni)와 그가 우디네세에서 함께 데려온 올리버 비어호프(Oliver Bierhoff)를 앞세운
 AC밀란은 시즌 막판에 믿기지 않는 7연승을 일구어내며 라치오를 승점 1점차로 제치고 기적의 스쿠데토를 달성했다

 :: 영광의 21세기

98-99시즌 기적의 스쿠데토를 달성한 후 밀란은 밀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입중 하나라고 할수 있는 우크라이나의
안드레이 쉐브첸코(Andriy Shevchenko)를 2000만달러에 영입하게된다.
그 뿐만 아니라 제2의 밀란 제너레이션의 축이라고 할수있는 젠나로 가투소(Gennaro Gattuso)와 세르징요
(Serginho) 까지 영입을 함으로서 자케로니는 99-00 시즌 우승을 향한 일념을 내세우지만 아쉽게도 밀란음
라치오와 유벤투스에 밀려 리그 3위를 차지하게 된다.



- 왼쪽부터 세르징요, 가투소, 쉐브첸코 -

그리고 다가온 00-01 시즌은 밀란에게 있어서 암흑기와 다름없는 시즌이었다.
리그에서는 6위를 하는가 하면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별다른 힘을 보여주지 못한채 시즌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쉐브첸코만이 24골을 넣음으로서 득점왕 2위라는 기록만 남겼을뿐 그 어떤 타이틀도 따지 못한채 밀란은
챔피언스리그가 아니라 4 ~ 7위까지 나갈수 있는 웨파컵에 진출하게 된다.
00-01시즌을 마지막으로 즈보니미르 보반(Zvonimir Boban), 올리버 비어호프 (Oliver Bierhof)같은 선수들이
이적을 하게된다.

하지만 이 기간에도 밀란에게 최고의 경기가 있었으니 바로 밀란더비에서 인테르 밀란을 6 : 0 의 점수로
이긴것이다. 형식상 인테르 밀란 홈이기도 했던 이 경기에서 코만디니(2골), 쉐브첸코(2골), 세르징요
(1골 3어시스트), 지운티(1골)의 골로 6 : 0의 승리를 장식, 밀란더비 역사상 최대의 골 스코어가 난것이다.
이경기에서 인테르 역사상 가장 최악의 더비결과가 나오자 팀의 간판 스타였던 비에리(인테르)는 눈물을
떨구고만다.
그리고 이 날의 히어로 세르징요는 가제타 델로 스포르티지에서 평점 9.5라는 점수를 받으며 최고의 평점을
받게된다.

00-01시즌의 암흑기가 끝난뒤 베를루스코니 밀란 구단주는 피오렌티나의 슈퍼스타 루이 코스타와 유벤투스의
필리포 인자기, 인테르 밀란의 안드레아 피를로, 스페인 알라베스의 콘트라와 하비 모레노를 영입하고
감독도 체사레 말디니에서 파테흐 테림으로 감독교체를 감행한다.
하지만 01-02 시즌 초반에 파테흐 테림은 성적부진이라는 이유로 밀란감독에서 잘리고, 후임으로 전 유벤투스
감독이었던 카를로 안첼로티(Carlo Ancelotti) 감독을 역임하게 된다.
당시 감독교체에 밀란팬들 대다수가 의문과 불만을 품었었는데, 그 이유가 성적이 그다지 나쁘지도 않았고
안첼로티 감독의 전술스타일이 당시에는 수비적이었고 우승한번 한적이 없는 감독을 밀란감독으로 하려는데에서
나온 것이었다.(하지만 안첼로티 감독이 당시 유벤투스에서 2위를 할때의 승점이 마르셀로 리피 감독이 이끌었던
01-02, 02-03 시즌 승점보다 높았었다.)



                                                     - 제2의 밀란제너레이션 발판을 마련해준 피포, 루이코스타, 피를로 -


하지만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당시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피를로를 수비형 미드필더(레지스타) 자리로 옮겨놓으면서
피를로의 장기를 최대한 끌어올려 가장 피를로에게 맞는 포지션을 찾아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커리어사상 최악의 시즌을 맞은 루이코스타와 잦은 부상으로 몇경기를 뛰지못한 파올로 말디니의 부재로
인해서 밀란은 리그를 시즌 4위로 마감하게된다.
이 기간에 밀란은 웨파컵 4강에서 도르트문드에게 무릎을 꿇고만다.

01-02 시즌 역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던 밀란은 인테르 밀란에서 클로렌스 쉐도르프(Clarence Seedorf)를
코코와 맞트레이드, 페예노르트의 에레디비지 득점왕 욘 달 토마손(John Dahl Tommason)을 자유계약으로,
인테르 밀란의 시미치 역시 밀란으로 자유이적 시키고, 별 다른 재미를 보지못했던 하비 모레노와
윙백이 너무 공격적이라는 이유로 콘트라를 내보내게된다.
그리고 수비진의 불안을 단번에 해소시킨 라치오의 간판스타 알레산드로 네스타를 영입하게된다.

02-03 시즌은 밀란에게 있어서 암흑기를 내보내고 다시금 과거의 영광스러운 밀란으로 돌아가는 시즌이었다.
안첼로티감독의 전술인 4-3-1-2 에서 3미들 왼쪽의 선수가 쉐도르프가 오기전까지 세르징요였는데
크로스는 리그 최고지만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나 여러가지 패싱력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었는데
그 모델에 있어서 최고인 쉐도르프를 영입함으로서 진정한 4-3-1-2 포메이션이 완성된것이다.

이 시즌 밀란은 같은 세리에-A 팀이자 라이벌팀은 유벤투스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맞붙고 마지막 승부차기끝에
AC밀란이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안첼로티 감독 커리어사상 첫번째 타이틀이자 첫번째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이었다.
또한 이시즌 영입한 쉐도르프는 3개의 팀에서 각각 한번씩 3번의 챔피언스리그를 차지한 이색적인 기록을 남기게 된다.
첫번째 타이틀은 아약스였고, 두번째는 레알 마드리드, 세번째가 밀란이 된것이다.
그리고 그 해 밀란은 코파 이탈리아까지 우승함으로서 더블을 하게된다.

02-03시즌 최고의 시즌을 맞은 밀란은 03-04 시즌전에 펼치는 이탈리아 슈퍼컵에서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을
한 라치오를 맞아 3 : 0 으로 승리하게 된다. 이경기의 영웅은 안드레이 쉐브첸코였는데 진정한 헤트트릭이라고
할수 있는 오른발, 왼발, 헤딩으로 골을 넣는다

03-04 시즌은 몇년간 이루지못한 스쿠데토를 차지하는 해가됐다.
그 첫번째 바로 브라질 상 파울로에서 영입한 신성 카카(Kaka')의 영입이었다. 원래 카카는 첼시에서도
영입하려고 했었는데, 밀란의 스카우터이자 부단장인 밀란의 슈퍼스타였던 레오나르도(Leonardo)의 힘에 의해서
밀란으로 이적하게 된것이다. 하지만 원래 안첼로티 감독역시 카카를 영입하자마자 주전으로 쓸 생각은 아니었다.
첫시즌을 임대보낸뒤 그 활약에 따라 다음시즌에 밀란선수로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첫 훈련에서 안첼로티감독의 마음이 바뀐것이다. 카카의 훈련을 본 안첼로티 감독은 이 선수가 보통선수가
아님을 깨닫고 밀란에 잔류, 결국 03-04시즌 루이 코스타와의 포지션경쟁에서 승리, 주전을 차지하게 된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라치오에서 임대해서 매우 쏠쏠한 재미를 본 쥬세페 판카로(Giuseppe Pancaro)의 역할과
AS로마에서 자유계약으로 영입한 카푸의 존재는 스쿠데토를 차지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이 해 카카는 세리에-A 최우수 선수상 및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을 획득 이적첫시즌을 그의 해로 만들어버리고
AC밀란은 17번째 스쿠데토를 획득하게된다.
하지만 밀란은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데포르티보를 맞아 홈경기에서 4 : 1 로 승리. 손쉽게 다음라운드 진출을
예상했지만, 2차전에서 4 : 0 으로 패배, 충격적인 8강탈락을 맞게된다.

04-05시즌은 제 2의 밀란제너레이션으로 불러도 될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구축하는 시즌이 되었다.
수비수에 야프 스탐(Jaap Stam)을 비롯해 에르난 크레스포(hernan Crespo)를 첼시에서 임대해옴으로서 공수에 있어서
                                                                                                                      - 밀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입중 하나가 된 카카 -
완벽에 가까운 전력을 구축하게 된것이다.  
특히 수비라인에 있어서는 역대 최강의 라인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의 라인업이었데 특히 말디니 - 네스타 - 스탐 - 카푸 로 이어지는 수비라인은 그 어떤팀도 비교가 안될정도였다.

그리고 크레스포를 임대해온것은 밀란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필리포 인자기의 장기부상과 쉐바의 잔부상으로 인해서 크레스포가 원톱으로 나온 경기가 자주 있었는데
그 경기때마다 크레스포는 자신의 몫을 다하며 팀 승리에 매우 큰 힘을 주었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16강 1, 2차전은 홈, 어웨이 모두 크레스포의 골에 힘입어 밀란이
8강에 진출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이 시즌은 밀란에게 있어서 악몽과도 같은 시즌이라고 말할수 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리버풀을 상대로 전반을 3 : 0 이라는 스코어로 끝내고 챔스우승에 코앞에까지 갔지만
후반전들어서 정말 말그대로 말도안되게 5분동안 3골을 먹으면서 3 : 3 으로 후반을 마친것이다

85분을 제압했지만 그 제압하지못한 5분간 3골을 먹힌 밀란으로서는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게다가 밀란이 마지막으로 내준 PK는 리버풀의 주장 스티븐 제라드의 시뮬레이션동작에 나온것이어서 밀란으로서는 더욱 잊고싶은 기억일것이다. 결국 승부차기끝에 리버풀에게 우승컵을 내준 이 경기는 이스탄불 대 참사 라고 불리우며 밀란 선수들에게 또 밀란 팬들에게 2년간 악몽에 시달릴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리그또한 유벤투스에게 내주면서 무관으로 시즌을 마칠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시즌의 타이틀은 유벤투스의 GM 모지에 의하여 무효가 되었지만....
하지만 안드레이 쉐브첸코는 이 해 우크라이나를 사상 첫 월드컵에 진출시키고 자신또한 24골로 리그득점왕을
차지하면서 발롱도흐를 수상하게된다.

05-06시즌 밀란의 출발은 산뜻했다. 크레스포를 영입하려고 했으나 첼시측에서 많은 돈을 내야 크레스포를 영입할수있다고 해서 밀란은 이탈리아의 미래라고 할수 있는 파르마의 스트라이커 알베르토 질라르디노(Alberto Gilardino)를 2500만 유로에 영입하고, 우디네세의 왼쪽 풀백 붙박이 주전 마렉 얀쿨로프스키(Marek Jankulovski)를 자유계약으로 영입하게된다. 그리고 인테르밀란에서 상호합의하에 계약해지를 하고 밀란으로 이적한 크리스티안 비에리(Christian Vieri)를 영입함으로서 포워드층에 한층 무게감을 두게 되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비에리를 영입할바에 토마손을 잔류시키는게 훨씬 낫다는 의견이 적지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마손은 결국 밀란의 슈퍼서브 자리를 뒤로한채 독일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하게 되었다.
팬들의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비에리는 결국 밀란에서 주전경쟁에서 밀리면서 초라한 성적표만을 남긴채 그해 겨울이적시장때 프랑스의 AS모나코로 이적을 하게된다.

- 토마손의 이적은 두고두고 밀란팬들에게 아쉬운 부분이 되었다 -

 

이 시즌 역시 밀란은 리그를 유벤투스에게 내주며 리그2위를 차지하게 되지만, 문제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일어났다. 8강 리옹전을 천신만고끝에 홈에서 3 : 1 로 이기며 토탈 4 : 2 로 4강에 진출하게 되지만
4강의 상대는 05-06시즌 유럽 최강의 팀중 하나인 바르셀로나와의 대결이었다. 1차전을 산시로에서 1 : 0 으로
패하게 되고 2차전 누 캄프로 원정을 간 밀란은 팽팽한 접전끝에 쉐브첸코가 극적인 헤딩골을 넣게된다.

하지만 머르크 주심은 쉐브첸코가 푸욜을 밀었다고 하면서 공격자 파울을 불었고 결국 경기는 0 : 0 으로 끝난채
바르셀로나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결국 바르셀로나는 결승전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2 : 1로 승리
하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게된다) 하지만 경기를 본 모두가 쉐브첸코의 골은 정당하다 했고 오로지 머르크 주심과 푸욜만이 쉐브첸코의 반칙이라고 주장했다. UEFA에서도 쉐브첸코의 골은 정당하다고 했지만, 경기는 이미 끝난뒤였고 밀란은 2년연속 무관의 제왕이 되고만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이 시즌 막바지쯤에 터진 칼치오폴리 사건덕에 밀란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이 충격으로 휩싸이게 되고 밀란은 -8점 감점이라는 처벌을 받게된다.
(결국 이 시즌 우승컵은 3위를 차지한 인테르밀란에게 돌아가게된다)

분위기가 최악인 상황에서 시작된 이탈리아의 월드컵은 결국 이탈리아의 우승을 끝으로 2006 월드컵이 끝나게 되고 유벤투스, 라치오, AC밀란, 피오렌티나, 레지나 5팀이 승점감점(유벤투스는 세리에-B에서 시작)을 당한채 시즌을 시작하게 되고, 칼치오폴리 및 월드컵 그리고 승점감점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밀란선수들에게 있어서 시즌 초반 3경기는 3연승을 하며 매우 분위기가 좋았지만, 시즌을 시작하기전 휴식도 많이 가지지 못한채 챔피언스리그 예선을 치뤘어야 했고, 결국 레드 스타와의 대결에서 합계 2 : 1 로 승리하며 본선무대에 진출하게된다.

하지만 리그 4번째 경기때부터 심판들의 눈에 뻔히 보이는 오심(?)들이 밀란을 괴롭혔고, 게다가 이 시즌에 영입한
올리베이라의 부진과 맞물려서 밀란은 3경기 연속 무승부를 기록하게 되고 9경기동안 4승 3무 2패를 기록하면서
출발이 좋지 못했다. 특히 베르가모에서 벌어진 아탈란타와의 원정경기에서는 피를로의 골이 무효를 당함과
동시에 요안 구르쿠프에게 경고를 줌으로서 오심의 끝을 보게된다.
게다가 이번시즌을 끝으로 아약스와 벤피카로 간 스탐과 루이코스타의 공백또한 컸다.
서서히 살아나는 질라르디노 또한 이상하리만큼 골이 터지지 않았고 인테르밀란과의 경기때 리그 첫골을 넣게된다.

포워드진의 부진과 쉐도르프의 부진, 그리고 심판들의 알수없는 판정등으로 인해서 밀란의 성적은 작년시즌과는
비교할수 없을정도였다.

하지만 운이 없으면 있게도 마련이라고 할까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밀란의 대진운은 8개 조 가운데 가장 좋다는
평가가 나오므로서 그나마 팬들이 안심을 하는 상황이었다.
챔피언스리그를 4경기만에 16강에 올려놓은뒤 리그경기에 임했지만 이번에는 골대가 밀란을 도우질 않았다.
최근 몇년간 골대맞출것을 모두 맞추고 전반기를 마친뒤 밀란은 윈터 브레이크 기간동안 강한 체력훈련에
들어갔고 후반기에 들어서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 오또와 호나우도의 영입은 0607시즌 최대 최고의 영입이었다 -

특히 후반기에 들어서 호나우도를 8.5m에 영입하고, 그동안 카푸의 노쇠화로 인해 불안했던 라이트백 자리를
라치오 오또를 영입하면서 서서히 밀란다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번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가장 힘든
경기로 뽑는 셀틱과의 대결에서 어웨이 0 : 0 , 홈에서 1 : 0 으로 이기며 8강에 진출하게 된다. 특히 홈에서
벌어진 이 경기에서 카카는 연장 전반 3분에 50여미터를 단독돌파하며 득점을 해내며 왜 그가 현 세계최고의
선수인가를 확인시켜주는 골이기도 했다.
리그에서도 점차 살아나면서 챔피언스리그존인 4위에 안착하게 되고, 8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맞아 홈에서 2 : 2
원정에서 2 : 0 으로 승리하며 4강에 진출하게 된다. 특히 뮌헨과의 대결에서는 바이에른 뮌헨 킬러라고 불리는
인자기의 맹 활약에 힘입어 4강에 진출하게 된다.

4강전에서는 EPL 3팀(첼시, 리버풀, 맨유), 세리에-A 1팀(AC밀란) 이 진출하게 되는데, 여기서 밀란은 맨유를
상대로 어웨이에서 3 : 2 로 패하게 되지만 이 경기에서 올드 트래포드 관중들에게 카카라는 선수의 가치를
확실히 각인시키고, 산 시로에서 벌어진 4강 2차전에서는 3 : 0 완벽한 승리로 결승진출을 하게된다.
결승전 상대는 이스탄불 악몽의 주인공인 리버풀을 다시한번 결승에서 맞붙게 되었다.
밀란과 리버풀 두팀다 조심스런 경기운영속에 리버풀이 조금씩 리드를 잡아갔지만 결국 첫골은 밀란에서
먼저 나왔다.

골문앞에서 카카가 공을잡고 턴을 하는순간 사비 알론소가 뒤에서 반칙을 범했고, 피를로의 프리킥을
인자기가 골문으로 대쉬하면서 인자기의 어깨에 맞고 골이 터진것이다.
이 골로 인해서 후반전 분위기는 바뀌었고, 결국 또 다시 필리포 인자기의 골로 밀란이 2 : 1 승리를 차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게된다. 2년전의 악몽을 날려버림과 동시에 7번째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을 차지함으로서
챔피언스리그 9회 우승인 레알 마드리드와 2개차이로 좁혔고, 카카는 이번 챔피언스리그를 계기로 세계최고의
선수로 등극하게 되었다.

06-07 시즌에서 파올로 말디니는 리그 600경기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되고, 챔피언스리그 8회 결승진출 5회 우승
이라는 대기록또한 달성하게된다.
그리고 06-07시즌을 마지막으로 레전드 코스타쿠르타가 우디네세전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기도 하였다.


                   

                     -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코스타쿠르타(좌)와 리그 600경기 대기록을 달성한 말디니(우) -





    출처 : SerieAmaniA

                                                                                          


 


 

CHAMPIONS
Scudetto
17

   01, 06, 07, 50-51, 54-55, 56-57, 58-59, 61-62, 67-68, 78-79, 87-88,
   91-92,  92-93,  93-94, 95-96, 98-99, 03-04

Coppa Italia
5
  66-67, 71-72, 72-73, 76-77, 02-03
Champions League
7
  62-63, 68-69, 88-89, 89-90, 93-94, 02-03, 06-07
Cup Winners Cup
2
  67-68, 72-73
Toyota Cup
3
  69, 89, 90
Italian SuperCup
5
  88, 92, 93, 94, 04
European SuperCup
4
  89, 90, 95, 03
League Top Raguler
Paolo Maldini
현재 진행형
League Top Score
Gunnar Nordahl
210 Goal